시한부 인생에 찾아온 사랑
변두리 사진관을 운영하며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한석규)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는 평소 살던 것처럼 인생을 마무리하려는 듯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진관을 운영하며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합니다.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정원은 손님으로 온 주차 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을 만나게 됩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정원은, 사진을 빨리 인화해 달라고 재촉하는 다림에게 쌀쌀맞게 대하지만 이내 미안함을 느끼고 사과의 표시로 아이스크림을 건넵니다.
근처 구청의 주차 단속요원 다림은, 단속 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 정원의 사진관에 매번 찾아오게 되며 단골이 됩니다.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다림은, 사진을 맡기러 올 때마다 다정하게 대해주는 정원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정원 역시 밝고 명랑한 다림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정원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림에게 먼저 다가가지는 않습니다. 다림과 자주 만나며 서로 호감이 있는 것이 명백함에도 자신의 입장에 대해 말해주진 않는다. 대시를 하는 쪽은 주로 다림입니다. 정원에게 나이와 결혼 여부를 묻기도 하고 은근슬쩍 데이트 신청을 하기도 합니다. 다림의 적극적인 호감 표현에도 정원은 그저 받아주기만 할 뿐입니다. 복잡한 그의 마음은 늘 온화하던 정원이 술을 마시고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 우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은 갑자기 쓰러져 입원을 하게 되고 그 사이에 다림은 다른 곳으로 배속발령이 납니다.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진 정원 때문에 다림은 속앓이를 하고, 정원 역시 다림을 생각합니다. 다림은 몇 번이나 정원의 사진관을 찾았지만, 사진관은 늘 불이 꺼져 있었고 다림은 편지를 남기고 떠나게 됩니다. 정원은 퇴원 후 수소문 끝에 다림이 자주 나타나는 길목 카페에서 기다립니다. 다림이 차량 단속을 위해 내리지만 정원은 멀리서 다림을 바라보기만 할 뿐입니다. 정원은 세상을 떠나기 전, 다림에게 답장을 쓰고 편지를 부치지는 않습니다. 겨울이 되어, 정원의 사진관은 아버지에 의해 운영이 되며 사진관에는 정원이 찍어준 다림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오랜만에 사진관을 찾은 다림은 진열대에 놓인 사진을 보며 미소 짓습니다.
한국 대표 멜로 영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멜로 영화의 대가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멜로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며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13년 11월에 재개봉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던 남자가 죽기 얼마 전에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는 이야기는 자칫 신파극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죽음을 맞닥뜨리는 과정을 비극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고 느리게 담아냅니다. 그래서 기존 한국 멜로 영화 스타일과는 다른 전략으로 대한민국 멜로 영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평론가들로부터 '지난 20년간 한국 멜로는 결국 허진호였다'라는 평(이동진 평론가), '멜로드라마의 눈물을 거부함으로써 슬프게 하려는 야심의 멜로드라마'라는 평(김영진 평론가), '타종한 뒤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범종소리처럼, 가슴을 뒤흔드는 영화'(하재봉 평론가)라는 평 등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습니다. 수상 내역으로는 19회 청룡영화상(최우수 작품상, 여우주연상, 신인감독상, 촬영상)을 수상하고, 34회 백상예술대상(영화 작품상,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21회 황금촬영상(신인감독상, 제작공로상)과 1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최우수 작품상,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은 정원과 다림이 만나고 헤어진, 여름(8월)과 겨울(크리스마스)을 하나로 잇는, 삶과 죽음의 다름과 같음을 읽게 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생각나는 영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이따금 한 번씩은 찾아서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90년대의 감성이 담긴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한석규 배우와 심은하 배우의 명연기와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어쩐지 따듯하고 산뜻하며 고즈넉한 분위기, 그 속에 시한부와 죽음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낸다는 것이 참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정원'은 독백을 한다. 기억 속의 무수히 많은 사진들처럼, 언젠가 사랑도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다고,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사진관 앞을 떠나던 다림의 모습과 정원의 담담한 내레이션이 더해지며 마무리되고, 그렇게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집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영화입니다. 혹자는 우리나라 멜로 영화의 역사는 <8월의 크리스마스>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또 다른 이는 멜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고도 합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쳐 준 인생 영화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 그 소중함을 이 영화를 통해 많이 느꼈고, 나의 인생과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이 포스팅을 하면서 다시 영화를 떠올리니 따듯한 뭉클함이 가슴에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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